한울이야기

법인[한울Story] 말순씨의 자립생활이야기



말순씨의 자립생활 이야기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말도 있듯이 혼자서는 살아가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귀찮아해도 부딪치면서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야 되는 거더군요. 저는 인생을 잘 살지는 못한 거 같아요. 잘 살았으면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게요.

 

저는 고향인 진주에서 자라 결혼을 하고 딸 둘, 아들 하나를 두고 생활하다가 병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아 주방에서 그릇을 닦거나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행동이 이상해 보였는지 남편은 병원에서 지내며 편하게 있어보라 하면서 저를 정신병원에 보냈습니다. 한 달 정도 병원에 있으면서 편하게 있기는커녕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고 저는 완전히 무기력해져서 밥을 먹으러 가지도 못할 만큼 움직일 힘도 없었습니다. 일어나지도 못해서 동료들이 옆에서 저를 부축해줘야 밥을 먹으러 가고 밥도 겨우 먹고 방으로 돌아올 때면 또 동료들이 저를 옆에서 붙잡아줘야 할 정도였습니다. 퇴원은 했지만 저는 그 후로 또 남편에 의해 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먹기 시작한 약은 아직도 먹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멀어지고 혼자가 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가 바깥으로 많이 돌았던 거 같습니다. 속이 시끄러워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시어머니에 의해 집에서 나가 살게 되었고 남편과도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도장을 찍으라고 내민 서류가 이혼 서류였던 것도 저는 몰랐던 겁니다. 

 

큰 애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린다고 한 날, 일도 빠지고 아이를 보러 갔는데 시부모님, 남편, 아이들.. 온 가족이 모두 저를 다 피하더군요. 큰 아이가 6학년이 되었던 그 해, 그 학교 운동장에서 저는 참 속상했습니다. 가끔 보는 아이들은 점점 더 저를 멀리하고 차갑게 대했습니다. 내 아이들이 아닌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가족은 점점 멀어졌습니다.

 


 '꿈꾸는집' 에서 혼자 사는 꿈을 꾸다. 


집을 구하는 일에 큰 아이와 의견이 계속 어긋나서 한울센터 복지사 선생님께 상의를 드렸습니다. 딸 아이는 자꾸 ‘엄마 혼자 못산다. 내하고 같이 살아도 잘 못하는데 우예 엄마 혼자 살려 하냐’고 하더라구요. 한울센터 선생님은 혼자 사는 것을 훈련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와 함께 사는 집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거기서 연습하면 나중에 혼자 살 수 있게 된다 했습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랑 같이 산다는 말에 딸도 안심이 되었는지 크게 반대하지 않아 저는 ‘꿈꾸는집’이라는 공동생활가정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공동생활가정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하고 하루의 일정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물론 자유 시간도 있지만 많은 제한이 있었습니다. 한 방에서 4~5명이 함께 지내며 힘든 일도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프로그램을 하고, 청소를 하고 씻고... 한 방에 사는 사람들끼리 생활패턴이 맞지 않아 잠을 제대로 못자기도 하고 소란이 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서로 양보하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럿이 함께 있으니 시끌벅적하기도 하고 함께 여행도 다닐 수 있고, 혼자 있을 때 해먹을 수 없었던 맛있는 음식 같이 해 먹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3년을 살고선 이제 독립을 해야 한다고 복지사 선생님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드디어 혼자 살게 된 것입니다.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집을 구하는 일과 살림을 장만하는 일이었습니다. 꿈꾸는집 복지사 선생님과 함께 방을 알아보러 다녔고, 봉천동 산허리에 있는 작은 옥탑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돈에 맞추느라 큰 집은 아니었지만 제 몸 하나 편히 쉬기엔 충분한 공간이었습니다. 공동생활가정 대체근무와 학교 청소 일을 하며 틈틈이 모아 놓은 돈으로 세간을 샀습니다. 돈이 넉넉하지 않으니 절약한다고 거진 중고를 구입했습니다. 복지사 선생님이 중고를 사자고 추천해줄 때는 때묻은 살림살이라고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새 살람살이는 기스나지 않을까, 고장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쓰게 되는데 중고제품을 쓰면서 편리한 것은 마음대로 마음껏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편리했습니다. 제가 집을 구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은 거진 복지사 선생님들이 도와주셨습니다. 꿈꾸는집에서 대체근무라는 것도 복지사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복지사 선생님이 차근차근 가르쳐 주며 ‘이래이래 하면 된다’ 해서 일지 쓰는 법도 배우고 했습니다. 해보니 해볼만 했습니다.

 


더 이상 물건 둘 곳이 없다. 더 큰 집이 필요하다.


방 하나, 작은 부엌 겸 거실, 몸 하나 기댈 곳만 있어도 다행이다 싶던 옥탑방에서 6년을 살았습니다. 혼자 살다보니 또 짐이 많아졌고 결국 좀 더 넓은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무렵 새로 알게 된 한울에 있는 복지사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니 LH에서 보증금을 지원해주는 게 있다면서 그걸 이용하면 돈이 많이 없어도 좀 더 큰 집으로 이사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선생님과 함께 또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딱 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살림살이가 많던 저에게 방이 2개며 부엌과 거실도 있는 집은 참 커보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새로운 복지사님과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이사를 하게 되었고 이사하는 날에는 복지사 선생님과 동료가 와서 집을 치우는 일이며 정리하는 일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냉장고 청소도 하게 되었습니다. 안쓰는 물건, 필요없는 물건은 버리게 되었습니다. 집이 오래 되어서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았지만 주민센터, LH, 집주인과 상의하며 집에 정을 붙여 나갔습니다. 




 앗, 천장에서 물이 샌다. 앗, 수돗물이 안나온다.  모든 도움을 끌어 쓰다. 일이 찬찬히 해결되다.


 물이 안나올 때면 어디로 전화해야되는지 몰라 복지사 선생님에게 물어봤고 그러면 복지사 선생님은 어디어디로 전화해봐서 확인해 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천장에 비가 샐 때면 복지사 선생님이 집주인과 상의해 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주인과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을 때면 복지사 선생님이 집주인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계단에 등이 들어오지 않아 집집마다 돌며 공동전기 사용에 동의서를 받는 일도 처음 해보았습니다. 처음엔 이 일들을 다 우예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복지사님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도와달라고 하면 복지사님이 잘 도와주었습니다. 친구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이 찬찬히 해결되었습니다.

 

오래되어 낡은 집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던 저는 복지사 선생님에게 SH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는 방법을 물어봤습니다. 저도 아파트에서 편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복지사님과 함께 평생 처음으로 SH 임대아파트 신청을 하러 갔고 떨리는 마음으로 발표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SH 로부터 큰 봉투를 하나 받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금 SH 임대 아파트에 4년째 혼자 살고 있습니다.













         [SH임대아파트 신청하는 날]

 


동료지원가로 다시 시작!


혼자 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돈’과 ‘외로움’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서울에 올라왔을 때도 저는 살아야겠다는 마음에 일을 손에서 놓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 청소 일을 가장 오래 했고 덕분에 몇 년 전부터는 청소를 하며 어깨를 많이 써서 어깨가 아파 더 이상 청소 일을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다시 청소 일을 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울센터에 다니면서 시작했던 동료지원가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동료지원가는 저처럼 정신장애가 있는 동료들을 만나면서 동료들의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일상 생활에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저는 동료들의 마음을 다 알진 못하지만 동료들이 청소나 식사 준비를 하는 것, 병원에 가거나 주민센터에 가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장을 보고 붕어빵을 사먹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또 지역 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 나눔 사업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동료지원활동, 함께 장보고 멸치 다듬는 것도 함께 해봅니다.]

 


"아이고, 우짜면 좋노, 복지사 선생님한테 전화해야게따"


함께 하면 있던 두려움도 없어지고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외로움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됩니다. 일을 하며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그러면서 외로움도 없어집니다. 웃을 일이 자꾸 생깁니다.

 

이렇게 생활하는 중에 저는 방송통신중학교와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이제 고3입니다. 컴퓨터로 수업을 듣는 일이 아직도 어색하고 공부가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합니다. 무언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이 저를 돕는 것 같습니다.

 

저는 좀 둔한 편이라 혼자 사는 것에 큰 두려움을 잘 못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막상 일이 닥쳤을 때 ‘아이고 우짜면 좋노’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해결이 되지 않으면 주변 복지사 선생님이나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차근차근 하나씩 해가니 익숙해졌습니다. 이런 게 자립생활인 거 같습니다.    


저 이말순도 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이말순님은 1960년 경남 모처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결혼 직후 조현병이 발병하여 가족들과 떨어져 지냈고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정신장애인 주간재활시설), EM실천(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꿈꾸는집(정신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을 거쳐 현재는 SH임대아파트에서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습니다.  

이말순님의 전화기는 쉴틈이 없습니다. 함께 지내던 동료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막막하게 살고 있다 표현하시지만 누구보다도 슬기롭게 생활하고 계십니다.

 



사회복지법인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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